반도체 패권 경쟁이 국가 간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 산업 질서를 재구축
동맹국에 보조금 제공하고 기술과 이익 공유까지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반도체 패권국 지위를 되찾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 공장을 유치하고 미국·대만과 협업 체계를 만들고 있다
부활의 상징, 구마모토 TSMC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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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는 일본이 반도체 패권국이던 1980년대 관련 산업을 이끌어온 중심 도시였다.
1960년대부터 NEC와 미쓰비시 반도체 공장이 세워졌고, 소니 세미컨덕터 솔루션스 공장과 도쿄일렉트론 공장이 세워졌다.
규슈 일대는 한때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0%를 차지해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지만 일본 반도체가 몰락하면서 지역경제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구마모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TSMC 공장이 들어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일본은 정부를 중심으로 1980년대 반도체 영광을 되찾자는 목소리가 크다.
구마모토야말로 반도체 부활의 상징적 현장인 셈이다.
2020년, TSMC가 일본에 공장을 짓는다는 언론 기사
2021년 6월 4일 경제산업성이 TSMC 유치공식 선언
2021년 10월 TSMC는 공식적으로 일본 내 파운드리 진출 계획을 발표, 공장이 세워지는 곳은 ‘구마모토현’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공장 건설비용의 40% 수준인 4760억 엔(약 4조55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 발표
2024년 12월, 구마모토 TSMC 공장에서 웨이퍼의 경우 12인치 월 5만5000장을 생산할 계획
현재 일본의 반도체 칩 공정 기술은 40나노(1㎚는 10억분의 1m)까지 구현
구마모토 공장에서 나오는 칩은 28~22나노 기술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가 3나노 칩을 양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TSMC 진출 이후 20개가 넘는 일본 소재 장비 기업들이 이곳에 기존 시설의 증강이나 신규 진출을 발표
소니 그룹은 구마모토현에 진출한 TSMC 새 공장 인근에 2024년 스마트폰용 이미지센서 공장을 착공하고 2025년 이후 가동을 목표
소니는 이미지 센서(CMOS) 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40%가량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라피더스, ‘메이드인 재팬’ 위해 뭉친 드림팀
‘라피더스’의 영어표기 ‘Rapidus’는 라틴어로 ‘빠르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치면 회사 이름을 ‘빨리빨리’로 지은 것이다. 그만큼 절박감과 의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피더스는 정부가 주도하지만 일본 대표 기업들이 출연금을 낸 민관합동 기업이다.
세계 15위권인 일본의 유일한 반도체 제조회사이자 낸드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2위권인 키옥시아를 비롯해 도요타,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이 참여했다.
회사의 초기 (자본금)은 8개 기업이 각각 낸 출자금 73억4600만 엔(약 702억5000만 원)에 정부 지원금 700억 엔(약 6650억 원)이 투입됐다.
회장으로 영입된 히가시 데쓰로는 반도체 공정 분야의 슈퍼급 엔지니어로 세계적 첨단 제조장치 기업인 도쿄일렉트론 사장
라피더스는 ‘2나노를 넘어(Beyond 2 nano)’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첫 시제품이 나오는 시기를 2027년으로 잡았다.
일본 내에서는 “삼성도 TSMC도 하지 못하고 있는 2나노를 하겠다니 꿈도 야무지다”는 냉소적인 여론도 많다.
“2027년쯤 되면 삼성, TSMC 모두 2나노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라피더스가 해낸다 해도 늦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라피더스 경영진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2나노칩 공장 부지도 일본 북부 홋카이도 중심도시 삿포로에서 가까운 치토세에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케 아쓰요시 사장은 “물과 전기 등 인프라가 안정적이고 국내외 인재들이 모이기 쉬운 곳에 공장에 세울 것”이라면서 “최첨단 반도체를 맞춤형으로 신속하게 공급하는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하면 삼성과 TSMC 등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의 소재 장비 기업들은 후공정 분야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은 칩 패키징 기술의 강자인 일본의 레조낙, 신코, 이비덴, 아지노모토, 디스코, 어드반테스트, JSR, TOK 같은 소부장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없다면 아무리 첨단 반도체칩 제조기술을 갖고 있다 해도 칩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이들 소부장 기업들이 TSMC와 연구·개발(R&D) 단계에서부터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